Don Sunpil

악마의 조언

돈선필
2020-06-01

21세기의 새로운 20년은 우리의 기대와 조금 다른 모습이다. 히키코모리가 가장 바람직한 삶의 자세이며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미덕이다. 자유보다 통제가 우선시 되어가는 지금, 과거와 상반된 가치가 대두하는 새로운 디스토피아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중인 셈이다. 여기에 약간의 상상력을 더해보자. 바이러스 대신 마법으로 인해 생겨난 삶의 제약이 존재한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야시다 큐의 도로헤도로는 슬럼가 마을인 ‘홀'과 그곳에 난입하는 마법사들이 뒤얽히는 사건을 다룬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진흙(泥, 도로)과 하수도 침전물(ヘドロ, 헤도로)이 뒤섞인 듯 축축하고, 지저분하고, 알 수 없는 것이 혼재한 세계. 이곳을 더욱 더 음침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는 마법 피해자의 기형적 모습이다. 차원의 문을 통해 이동하는 마법사들은 검은색 연기처럼 보이는 마법을 사용하며 홀의 주민을 상대로 마법 연습을 자행한다. 덕분에 홀에 사는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화학 테러 같은 마법과 뒤얽힌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처럼 작품의 배경이 매우 끔찍한 상황으로 그려지지만, 예상과 달리 전반적인 이야기의 정서가 매우 유쾌하다. 도로헤도로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부분은 디스토피아 판타지적 세계관이나 캐릭터 간의 긴박한 갈등 상황이 아니다. 이상하리만치 모두가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유유자적하다. 주인공 일행은 물론, 위기에 빠진 조연도, 마법 연습에 당한 피해자도 누구 하나 심각하지 않다. 간단한 예로 죽은 이가 좀비로 되살아나는 ‘리빙 데드 데이’는 여러 경품 이벤트가 함께하는 가장 큰 축제다. 이렇게 기묘하리만치 위기 사태에 무덤덤한 분위기는 이 이야기 속 세계를 관장하는 존재가 신이 아닌 악마이기 때문이다.

도로헤도로의 악마는 아이돌에 가깝다. 악마가 만들어준 마스크는 가장 인기 있는 아이템이며 악마가 되기 위한 시험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악마는 전지전능한 힘의 대가인 무료함을 해소하기 위해 온갖 기행과 의도적인 바보 행세를 취하는 기묘한 캐릭터로 묘사된다. 철부지 마냥 위기감이 결여된 악마적 삶의 태도가 이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의 보편적 생활 방식으로 자리 잡혀 있다. 흥미롭게도 이 이야기는 의연하게 삶을 살아가는 기술을 간접적으로 지시한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지금을 다시 바라보면 기시감을 느낄 수 있다. 자가격리 중 거울 속의 자신과 끝없이 건배하며 해맑게 미소 짓는 남자의 모습은 농담과 냉소로 뒤얽힌 도로헤도로 속 악마의 하루 일과를 꼭 닮아있다. “언제나 밝게 웃고 있어라”라는 악마의 입버릇은 한발자국 가까이 다가올지 모르는 디스토피아를 대비한 농담 어린 조언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만든다.


ARENA 2020년 6월호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