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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게임, 99초의 리얼리티

돈선필
2019-10-23

격투 게임이 어렵다는 편견은 틀린 말이 아니다.

복잡한 커맨드를 순식간에 입력하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격투 게임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캔슬 시스템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선택지다. 캔슬이란 특정 기술이 발동하는 순간 새로운 커맨드를 입력하면 발동 중인 기술이 취소되고 즉시 다음 기술로 이어지는 일종의 버그다. 이 버그는 게임 시스템의 명료함보다 플레이어가 찾아내는 새로운 가능성을 선호했던 디렉터의 혜안으로 살아남는다. 이후 ‘캔슬’은 오늘날 격투 게임의 심도를 높이는 기반이 되어있다. 문제는 이 시스템 덕분에 격투 게임을 위한 공부가 필요해졌다는 점이다. 모르면 이유 없이 계속 맞는다. 유리한 공방을 위해 끝없는 연구와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 격투 게임이다.

프로 격투 게이머는 캐릭터의 움직임 사이를 미려하게 연결하고 상대방이 놓친 작은 틈새를 공략하는 장인이다. 뛰어난 반사 신경과 동체 시력뿐만 아니라, 심리전의 파해법과 위기 상황에 냉정을 유지하는 담대함까지 필요하다. 속도는 다르지만, 일대일로 대결하며 차례를 주고받는 바둑과 흡사한 면도 많다. 판정을 내리는 것은 시스템이기에 남 탓하기도 어렵다. 결국 자신이 선택한 찰나의 순간이 쌓여서 모든 결과를 만든다. 가끔 경기 종료 후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선수에게서 몇 초 전의 자신을 책망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격투 게임은 자신이 마주한 거울에 가깝다. 삶의 시간 동안 쌓아온 기보를 비추는 투명한 거울. 모든 결과는 스스로 결정한 선택의 대가다. 아마 이런 사실이 격투 게임의 대중성을 떨어뜨리는 주원인이 아닐까. 게임을 할 때 즐거운 순간보다 납득할 수 없는 선택을 했던 자신을 계속 되새기게 만드는 고문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르를 사랑하는 사람은 마조히스트일까? 아마 그들은 기묘한 캐릭터들의 비현실적 공방이 무엇보다도 현실을 반사하는 99초의 리얼리티란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일 것이다.

“게임은 시스템을 통해 세계를 알게 하는 것”이라는 멋진 문구가 다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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