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 Sunpil

피규어라는 상태

돈선필
2020-02-02

형태가 탄생하는 과정에 관심을 두고 그것에 대한 이야기나 소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사회 속 크고 작은 사건을 ‘피규어’로 정의하고, 피규어에 어울리는 조형물이나 서사적 영상을 제작한다. ‘피규어’는 한 시대를 가늠하는 상태에 가깝다. 참조 대상이 함의하는 이야기나 감각, 정서, 시간을 구체적인 사물로 구현화한 모습이 바로 ‘피규어’다. 보통 합성수지 캐릭터 모형 정도로 이해되는 피규어지만, 예술가의 사적 언어인 조각과는 달리 피규어는 언제나 공동의 언어를 담고 있다.

피규어를 비롯해 오늘날의 공산품=레디메이드 사물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 간 의사소통이 있어야 한다. 대량생산을 위한 자동화 공정과 고가의 금형 장비는 제작비에 상응하는 많은 이의 열망이 없었다면 탄생조차 불가능했을 것만 같다. 여러 사람의 대화가 모여서 하나의 사물이 존재하게 만드는 셈이다. 이런 과정은 마치 우리가 대화할 때 사용하는 언어, 기호, 이미지의 출현이나 쓰임새를 닮아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오늘날 어떤 형태로든 대량 생산되어 자신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입체물은 우리의 대화와 사고가 현실에서 구현된 조각임이 아닐 이유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항상 무언가 형태를 유지하는 사물을 만들어 내는가?

공교롭게도 우리가 모호한 관념을 구체적인 상태로 기억하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리고 이 현상의 인과관계는 그리 촘촘하지 않다. 주변을 둘러보자. 유년기의 흐릿한 기억을 간직한 인형이나 장난감,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 그 순간을 담아내는 기념품, 맹세나 약속을 구체화하는 반지, 종교적 관념을 담아내는 상징과 조각들까지. 기표와 기의가 느슨한 연관성 속에서 짝을 이룬다. 정열적인 연인의 사랑이 뜬금없는 자물쇠의 모습으로 사물화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는 그 구체적이고 정형적인 상태를 통해 무수한 감정과 기억과 감각을 되풀이하며 대화한다. 사물의 형태를 빌려 언어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시공을 담아내는 것은 모호한 상태도 추상적 느낌도 아닌 구체적인 사물과 연동하는 과정 그 자체다. 사물과 우리의 세계는 상호보완적 관계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이의 경험을 응축한 조각의 모습이 될 때도 있고, 작은 공산품이 탄생하기 위한 역학적 구조와 사회적 합의를 이해하는 시발점의 역할을 맡기도 한다. 때론 역설적으로 불가해한 상태의 조형물이 삶의 일부가 되기도 하고 시대의 호명에 따라 갑작스레 존재하는 사물을 쉽게 발견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질로 존재하지 않는 감각, 상태, 상황, 감정을 마치 존재하는 것 마냥 사물화하는 태도를 ‘피규어’라 부를 수 있을까? 피규어는 언제는 이미지와 서사에 의존한다. 스스로 자신의 몸과 존재를 증명하는 조각과 달리 피규어라는 불리는 것은 그 물질 자체보다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다른 상태들을 항상 지시한다. 때론 캐릭터라는 도상으로 때론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으로 피규어의 몸은 목적 있는 쓰임새를 위해 탄생한 쓸모없는 사물이다. 미술가라는 이름으로 작업 혹은 미술이라 부르고 있는 것을 양산하는 이 과정은 당대의 모습과 시간에 의지하며 뚜렷한 형태로 무목적의 모호함을 말하는 ‘피규어’인 것이다. 시간을 소비하며 무언가를 행하는 매순간이 ‘피규어’라 부르는 상태들이 모여 지금을 설명할 수 있는 지표가 되기를 언제나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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