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 Sunpil

“게임은 시스템을 통해 세계를 알게 하는 것”

돈선필
2020-08-01
월간미술 2020년 8월호 미술과 게임의 동맹

“게임은 시스템을 통해 세계를 알게 하는 것”. 수년 전에 우연히 발견한 저 문장은 게임의 개념을 담백하게 정의하고 있다. 게임 속 그래픽 툴의 눈부신 발전과 비교해볼 때 그 게임을 지탱하는 시스템은 획기적으로 변화해왔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혁신보다는 안정을, 어렵사리 발견한 시스템을 끝없이 갈고 다듬고 우려낸다. 오늘날 게임 업계의 리마스터, 리메이크, 양산형 시리즈의 유행이 시사하는 바처럼, 게임의 시스템이란 새롭게 성장하는 생명체라기보다는 현실의 일부를 조금씩 채굴하는 광물에 더 가까워 보인다. 게임은 세계가 작동하는 구조의 작은 부분을 본떠 규칙을 부여한다. 이 규칙이 게임 속 시스템이다. 플레이어는 개발자가 선별한 제약 안에서 한정된 선택지를 고르는 과정을 반복한다. 다시 말하자면 게임은 세상의 모습을 두루뭉술하게 복제한 모형을 가지고 노는 정형행동에 가깝다.

이에 반해 게임 속 시각 요소는 굉장한 속도로 선명해지고 있다. 그래픽 엔진의 눈부신 발전은 현실을 매우 그럴듯하게 모사한다. 해가 갈수록 높아지는 해상도. 광대한 디지털 캔버스에 담을 수 있는 풍성한 내용이 과거의 픽셀과 폴리곤의 투박함을 망각하게 한다. ‘AAA급’이라 불리는 게임의 모양새를 살펴보면 무엇보다 화려하고 사실적인, 충실한 ‘리얼리티’의 반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최근 게임이 영화를 닮아가는 현상과 자연스레 연동된다. 텍스처의 재현도 뿐 아니라 자연스러운 모션, 생생한 성우의 연기, 안면근육을 완벽하게 본뜬 표정까지, 게임 속 이벤트 장면만 짜깁기한 영상은 이미 한 편의 영화다. 엔딩 후 나열되는 스태프 롤을 보면 리얼리티를 위한 다양한 인력과 거대자본의 모습이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런 게임 속 경이로운 풍경에 우리는 매번 놀라진 않는다. 반복되는 시각적 연출에 빠르게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볼 때 리얼리티를 위한 과도한 자원 투입은 극단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에너지 낭비다. 지속력 없는 찰나를 위해 무리한 투자를 반복하는 셈이다. 게임을 통해 체감하는 ‘새로움’은 경험해보지 못했던 시스템과 조우하는 순간에 있다.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인지하지 못한, 선택하지 못한 세계의 구조가 게임 속 시스템을 통해 드러나는 과정이 게임을 예술의 범주로 포섭한다. 이 같은 게임 시스템의 채굴 과정을 소외시키고 상호작용과 종합 예술성만을 이야기하는 인과의 흐름이 리얼리티를 향한 신앙을 더욱 견고히 만든다. 다른 한편으로 모두가 리얼리티에 매진하는 당대의 풍경은 이미 새로운 시스템이 고갈되어버린 환경에서 불가피하게 선택한 결과라는 불안감도 엄습한다. 촘촘한 해상도와 장인의 노고로 장식된 아름다운 게임의 모습은 돌고래 떼가 죽어 있는 해변의 풍경 같은 어두운 미래를 닮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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