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 Sunpil

피규어와 피규어 아닌 것 사이에서 형태를 음미하는 법

유지원
2019-04-01

무대 위 관심 있는 조각들

벽돌로 된 벽에 둘러쌓여 아늑하고도 서늘한 이 공간은 천고가 적당히 높아 마치 커다란 상자 속으로 들어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전면에는 계단식 좌석이 있고, 관객의 시선이 떨어지는 곳에 무대가 있다. 무대는 다섯 개의 플랫폼으로 조각나 있고, 각 플랫폼 사이로 길이 나 있어서 관객석에서 내려다보면 이 다섯 조각들을 들어 올려 끼워 맞출 수 있을 것만 같다. 다섯 개의 진열장이 조각난 무대의 외곽에 올라서있고, 중앙에는 작은 단들이 놓여 있다. ‘사물의 모습이나 형태를 음미하는 상점’을 뜻하는 ‘끽태점’은 공간의 극적인 효과를 달리 거부하지 않는다. 직감적으로 다가오는 무대와 관객석의 구분 때문에 기묘한 관객 참여극에 일부가 된 것 같은 어색함에 잠시 괄호를 쳐 둔다면, 막상 진열장 안에 빼곡히 들어찬 것들은 순식간에 보이는 사물과 보는 이 사이의 거리를 지운다. 숨죽인 채 미적 대상과 조우하는 경험이라기보다 노골적인 경탄과 흥정을 부르는, 장인의 손길과 대량생산의 공정을 왕복하는 산업의 산물인 피규어들. 추억을 떠올리고, 주거지의 남은 면적을 가늠하게 하는 관심 많은(interested) 사물들. 끽태점은 피규어를 둘러싼 날 것 그대로의 현실과 미술 작품의 감상이 요하는 진공의 조건 사이에서 형태를 보는 다른 방식을 모색한다.

작가는 앞으로 펼쳐질 극에 대한 시놉시스를 몇몇 사람들에게 이메일로 전송하곤 한다. 타래로 이어지는 일련의 이메일은 도모하는 프로젝트의 제목을 선언하며 시작되고, 이 제목에 대한 설명으로 전개된다. 이렇게 그가 벌이는 일의 시작에는 언어가 있다. 원형사가 제작한 정품 레진 킷을 복제한 리캐스트 킷에서 발견되는 변형이나 결함으로부터 열화복제된 서울을 읽어낸 민메이 어택: 리-리-캐스트(2016)가 그러했고, RPG 게임 ‘드래곤퀘스트’에 등장하는 몬스터인 ‘하구레 메탈’로부터 경험치를 한꺼번에 획득할 수 있는 운과 시간의 모양을 독해한 METAL EXP: 외톨이의 움직이는 시간(2018)이 그러했다. 이때 언어는 사물 혹은 형태를 특정한 방식으로 읽어내기 위해 동원된다. 언어가 시작점인 것 같지만 사실은 형태가 먼저 있다. 형태에 대한 음미는 무언가를 마주하고, 그것과 일정 시간 동안 함께 지낸 뒤, 그것이 어떠한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를 언어를 통해 살펴보는 일이다.

이러한 음미의 언어는 끽태점에서 구체적인 형태로 전환된다. 계단을 내려오면 단 위에 올려진, 혹은 4단 진열장 안에 빼곡히 놓인 사물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이 사물들은 아는 만큼 읽히는, 특정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에게 말이 되는, 그 자체로 기호와도 같은 것들이다. 전면의 우편에는 미소녀를 비롯한 캐라의 얼굴과 과장된 신체의 조합으로 된 피규어가, 좌편에는 이와 대조적인 스타일의 미국풍 액션 피규어가 배치되어 있다. 후면 우편에는 특수촬영물, 좌편은 가면라이더와 드래곤퀘스트 등에 집중되어 있다. 즉각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좋은 기억을 자극하여 반가운, 유심하게 보게 되는 값비싼 사물들을 알아보고 하나씩 뜯어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선 더 거칠게 구분해보자.

상자들, 부피감과 리얼리티의 지표

상자와 상자가 아닌 것이 놓여있다. 그저 부속물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지만 피규어가 손상되지 않고 존재하기 위한 최소한의 면적을 보장하는 집이자 피규어의 가치를 입증하는 보증서에 다름 없다. 거친 판자로 된 박스는 조심히 취급해달라는 문구나 거래처 등 최소한의 정보만 지니고 일정한 공간을 차지함으로써 피규어의 부피감을 전시하고, 소장자의 공간은 엄연히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알린다. 별도의 아크릴 관을 제작하지 않으면 일정 규모 이상의 피규어는 본래 담겨 왔던 상자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피규어를 소유한다는 것은 곧 피규어만큼의 부피를 차지하는 상자가 머물 공간을 확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배송용 박스를 개봉하면 피규어의 공식 케이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원작에 해당되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캐릭터의 데코마스 이미지, 출시년도와 에디션 등의 장보가 기재된 케이스는 한편으로는 이 사물들이 공정을 통해 대량 생산된 산물이라는 것을 증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해당 사물이 왜 특별한지를 가늠할 수 있도록 한다. 박스에 그려진 이미지, 즉 대량생산될 결과물을 위해 수작업으로 공들여 제작한 데코마스의 이미지는 그 앞에 놓인 피규어와 경쟁하거나 이를 정당화한다. 영화 펄프 픽션 액션 피규어의 포장지에는 단발 머리의 우마 서먼이 담배를 들고 엎드려 있는 아이코닉한 포스터가 붙어있지만 그 배경을 두고 포장지 안에 진열되어 있는 지미 디믹의 피규어는 훨씬 단순한 세상에서 온 것 같다. 피규어의 집이자 보증서인 상자들은 이미 끽태점에 놓인 사물들의 부피감이나 리얼리티에 주목하도록 한다.

여기서 리얼리티라는 말은 편의상 쓰게 된 것인데, 끽태점에 진열된 수많은 스타일의 조형물들을 한꺼번에 본다면 직관적으로 어떤 것은 더 ‘리얼’하고 어떤 것은 덜 그러하다고 판단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리얼’하다는 것은 ‘현실적’인 것과는 다른데, 꽤 정교해보이는 사쿠라 피규어가 리얼해보인다고 해서 현실에서 마주하는 소녀의 비율에 근접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상자가 제시하는 평면 이미지와 얼마나 유사하게 부합하며 정교하게 표현되었는지가 관건이다. 피규어 특정적 리얼리티 지수의 격차는 같은 단 위에 놓인 두 개의 하츠네 미쿠 피규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확성기에 노래를 부르는 보컬로이드의 하츠네 미쿠의 푸른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격렬한 동작과 바람과 휘날리듯 포현되어 있고 피규어가 놓인 난간이나 기둥의 질감도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반면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작은 넨도로이드 미쿠다요는 과격하게 단순화된 2등신의 모형으로, 앞서 본 피규어와 머리색과 입고 있는 옷의 형태만 유사하다. 이러한 리얼리티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원형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는 것은 특정한 머리스타일과 소매가 특이한 의상이다. 단순한 식별가능한 ‘본질’에 상이한 비율과 완성도를 적용하여 발생하는 리얼리티의 격차는 진열된 사물들을 가로질러 전혀 다른 세계관이 중첩되어 있는 장면으로 다가온다.

생기를 잃은 캐릭터, 얼굴 없는 머리들

각 사물의 스케일이나 리얼리티의 단차를 실감하던 중 상이한 조형들이 끼어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회색이나 적갈색 서페이서로 처리된, 미끈한 피규어들 사이에서 미완의 형태로 보이는 덩어리들. 채색을 하기 위한 준비를 마친 듯 한 입체 모형은 이미 존재하는 피규어를 캐스팅하거나 피규어 특유의 양식을 참조하여 작가가 새로 만든 것들이다. 이 조형들은 몇 가지가 결여된 탓에 피규어라고 부르기 어려워 에둘러 ‘조형’ 혹은 ‘사물’이라고 부르는 편이 낫겠다. 우선 캐릭터들의 특징과 혈색을 표현하여 피규어적 리얼리티를 부여하는 색채가 완전히 빠져있다. 피규어 상자에 그려져 있는 두근두근 메모리얼의 후지사키 시오리의 붉은 생머리와 뽀얗고 투명한 피부가 무색하게 그 앞에는 청순한 분위기와 환영이 벗겨진 상아색 레진 덩어리가 놓여 있다. 나란히 놓인 CREATOR X CREATOR 시리즈의 오자루 베지터 피규어 세 점 중 단 하나만 본래의 색을 유지했고, 바로 뒤에는 회색조, 그 뒤에는 적갈색의 모형이 놓여 있다. 색의 부재는 피규어 케이스에 그려져 있거나 감상자의 머리 속에 있는 원형과의 유사성을 간단하게 끊어내면서 덕지덕지 붙어 있는 욕망까지 절단해낸다. 남은 것은 일정한 부피와 무게를 지닌 사물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림자가 어떻게 지는지, 어디에 무게 중심이 실리며 실루엣은 어떠한지가 관건이다. 모노크롬 피규어들은 기존의 피규어를 지속시켜왔던 과제, 즉 욕망으로 충전된 재현의 의무로부터 거리를 둔다.

얼굴이 없는 조형도 종종 보인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두 개의 아야나미 레이 조형이다. 뒷편의 진열장 위에 놓인 상아색의 레진 조형은 매끈한 신체 표현이 무색하게 얼굴은 제대로 알아볼 수 없도록 무언가 뭉게뭉게 증식하고 있다. 다른 진열장 안에 들어있는 바스트 조형의 얼굴은 뭉개져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아야나미 레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조형과 나란히 전시된 하늘색 아크릴 물감이다. 미쿠 피규어가 상이한 비율과 표현에도 불구하고 머리 스타일과 의상 덕분에 동일성을 유지할 수 있었듯이, 하늘색 물감이 칠해진 일그러진 얼굴은 캐릭터의 동일성, 혹은 ‘생명’을 위해 갖추어야 하는 요소가 얼마나 극단적으로 환원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나아가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의 사쿠라 쿄코의 가발 파츠는 아예 얼굴이 없는 채로 적갈색 덩어리의 일부로 버무려진다. 어쩌면 얼굴은 더 이상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어떤 캐릭터, 어떤 원형이 될 필요가 없다는 듯이, 색을 포기하고 얼굴을 잃고, 덩어리가 된다. 이처럼 색체가 부재하고 얼굴이 없는 조형은 피규어적 리얼함을 걷어내고, 사물 자체의 존재감, 형태, 양감에 주목하도록 한다. ‘태’를 ‘끽’한다는 것은 피규어의 관습적인 감상 및 평가 방식, 즉 (단일한 이미지로 추릴 수 없는) ‘원본’에 가깝게 재현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는 것과 구태의연한 욕망의 재생산을 빗나가되 여전히 ‘흥미’를 갖고 보는 영역을 만들고자 한다.

출구 근처의 좁은 공간은 마치 극이 마친 후의 커튼 콜, 혹은 크래딧 페이지와도 같이 아련하다. 잔뜩 놓여 있는 배송용 박스는 조형이 가능하도록, 혹은 불가능하도록 하는 조건을 상기하며 제한된 조건 안에서 최적의 결과물을 내는 일에 대해 말한다. 그 위에 놓인 얼굴이 지워진 머리들은 형태를 맛있게 즐기는 데에 굳이 얼굴을 마주하고 눈을 맞출 필요가 있는지를 되묻는다.


아트인컬처 2019년 4월호 돈선필, 형태를 만끽하는 상점/ 유지원의 무수정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