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 Sunpil

프리뷰 텍스트: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는 것들

유지원
2019-01-30
피규어 TEXT : 원더 페스티벌 리포트, 돈선필, 킷타이텐, 2019년.

한창 더울 때 민메이 어택: 리-리-캐스트(시청각, 2016년 7월 14일 ~ 8월 14일)에서 돈선필의 작업을 처음으로 접했다. 피규어, 또는 피규어인 체하는 사물이 생활 공간처럼 연출된 한옥-전시장에 잔뜩 널려 있었다. 하지만 그곳을 오타쿠의 서식지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피규어-사물이 애정하는 수집품에 합당한 진열장이 아니라 바닥이나 탁상 위에 무심하게 놓여 있을 뿐 아니라 가격표까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건너편 작은 방에는 책걸상이 놓여 있고, 그 위에 컴퓨터 모니터가 켜져 있었다.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을 본 뒤 나는 그 공간 전반을 지배하는 어떤 어색함이 이 영상 속의 화자—또는 작가 자신—가 피규어를 아끼는 일 자체에 몰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영상에서 화자는 선물받은 ‘아야나미 레이’ 피규어를 요리조리 돌려본다. 만듦새가 어설프다. 하지만 그 조형물을 단지 완성도가 떨어지는 공산품, 즉 불량품으로 취급하기—반품이나 교환, 벼룩시장 매매 등의 옵션을 고려해보기—보다 그 모습이 되기까지의 경위를 차분히 살핀다. 손에 쥔 합성수지 덩어리가 아야나미 레이 자체라기보다 이를 (조금 모자라게) 지시하는 기호에 가깝다는 것을 읽어낸 화자는 심지어 직접 피규어-사물-기호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그 결과물은 만화에서 동작을 나타내는 기법을 그대로 적용한 듯 가방을 든 팔이 세 개나 달려 있고, 해당 캐릭터의 가벼운 ‘본질’을 대놓고 뒤집어씌우겠다는 건조한 의지를 대변하듯 전체가 하늘색이었다.

혹시 기념품 삼을 만한 것이 있을지 둘러보다가 손바닥보다 조금 큰 아담한 책 한 권을 골랐다. 피규어 TEXT(유어마인드, 2016). 작가가 쓴 텍스트가 수록되어 있고, 삽화는 저작권 문제로 빈칸이었다. 나중에야 작가가 운영하던 ‘오픈 베타 공간 반지하 B½F’의 블로그에 삽화를 포함한 전문이 진작에 업로드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피규어에 관한 텍스트인 줄만 알고 구매한 그 책은 원본-데이터가 손에 잡히는 리얼리티로 번안된 사물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피규어였던 것이다. 이런 피규어의 작동 방식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좌표 지점, 즉 서울을 열화-복제된 결과물로 독해하기 위한 메타포로 작용하기에 이른다. 언제나 원본에 대해 파생적일 수밖에 없는, 하지만 한 차원을 추가해야만(2D→3D) 현현할 수 있는, 그 과정에서 무언가는 덧붙고 다른 무언가는 누락돼 결국 원본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로 다시 태어나고 마는 피규어-세계. 


그 뒤 1년이 조금 넘게 지나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작가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제목은 METAL EXP: 외톨이의 움직이는 시간, 그리고 전시의 주요 이슈는 “시간과 운의 ‘모양’”이었다. 다가올 전시의 주요 소재는 ‘드래곤 퀘스트’라는 RPG 게임에 등장하는 몬스터인 ‘하구레 메탈’이다. 이 몬스터는 아주 운이 좋아야만 조우할 수 있는데, 작가는 한 번 만나면 상당한 경험치를 단숨에 획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메탈 슬라임을 경험치를 축적하고 ‘레벨 업’하는 시간이 농축된 모습 그 자체로 보기로 한 듯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펼쳐진 METAL EXP: 외톨이의 움직이는 시간(취미가, 2018년 2월 2일 ~ 28일)은 투입한 시간만큼 성장해가는 RPG 게임의 문법을 따르듯 대단한 서스펜스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꾸며졌다. 한쪽에는 안락한 소파와 TV 모니터, 다른 한쪽에는 게임을 직접 할 수 있는 콘솔, 그리고 그사이를 오가는 메탈 모형을 태운 로봇 청소기와 곳곳에 부착된 메탈 오브제들. 푹 꺼지는 소파에 파묻혀 누군가에게 힘겹게 편지를 쓰는 화자의 설명을 한참 듣다가 자리를 옮겨 승패가 바로 판결 나지 않는 게임을 어정쩡하게 앉아 플레이하고—‘이거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이따금 반짝이는 은색 사물과 이미지들에 시선을 빼앗긴다. 지난 전시보다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지가 더 희미해졌고, 그 때문인지 약간은 우울할 만큼 차분했다.

하구레 메탈을 시간이 형상화된 모습으로 이해하려는 작가의 독법과 구체적인 상황과 경험을 구현하는 전시 만들기에서 추상적인 관념을 구체화하려는 꾸준한 열망이 보인다. 구체적인 형태를 동원해 보편적인 시공 가운데 자신의 좌표 지점을 파악하려는 접근이 두 개인전을 관통한다. 2016년 여름에는 아야나미 레이였고, 2018년 늦겨울에는 하구레 메탈이었다. 이 형상들은 특유의 공간 연출과 설명이 많은 영상을 경유하며 제 나름의 맥락을 획득해 기호로 재구성된다. 관념은 구체적인 몸체를 얻고, 그 형태는 모종의 질서 속에서 마치 언어처럼 작동하기 시작한다. 손에 잡히지 않던 뭔가는 분명하게 만져지는 사물로 나타나고, 그 사물은 이내 독해된다. 피규어든 게임든 캐릭터든, 마냥 좋아하긴 이미 늦어버린 듯하다. 


서사가 담긴 콘텐츠에는 악인이든 성인이든 위인이든 범인이든 특정 인물이 어떻게 될 것만 같다는 직감을 주는 순간이 있다. 현실에서는 그 예감이 번뜩 찾아온다기보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아, 그때 그것이 그것이었구나.’하는 미적지근한 깨달음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피규어 TEXT: 원더 페스티벌 리포트의 초고를 받았을 때, 그의 전시에서 느꼈던 눅눅함, 그러니까 아끼는 사물을 잔뜩 풀어놓고는 마냥 좋아하지는 못하는 난감함 같은 것이 떠올렸다. 원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작가는 헌터×헌터에서 각 캐릭터가 서로 다른 능력치를 지닌 것처럼 주변의 사람들도 어쩌면 고유의 강점을 발휘하며 지내지 않을까 상상할 때가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새삼스레 어색해하기” 같은 것이 작가의 능력치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피규어를 좋아하면서 갑자기 뒷짐 지고 조각조각 뜯어보기 시작하는 그의 습관은 작업을 견인하는 힘인 동시에 그를 한참 더 외롭게 만들지지 모른다.

역시 작가는 지난 몇 년간 수차례 방문한 아키하바라의 거리와 원더 페스티벌에서도 완전히 몰입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좋아하는 것은 즐기면 그만이었을 것을, 차마 행복한 소비자가 되지 못하고 급기야 피규어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는 글을 한 무더기나 써버리고 만 것이다. 책이 완성되기까지 수도 없이 읽은 원고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은 이제와서야 ‘그랬구나.’ 하며 수긍하게 되는 과거의 순간을 끌고 들어왔다. 책의 내용은 독자가 직접 접하기 마련이므로 나는 근과거의 경험을 통해 이해한 바를 경유해 작가가 자주 사용하는 두 가지 어휘를 짚고 넘어가는 것으로 책에 관한 이야기를 갈음하고 싶다. 

“모습”

이 책에서 “모습”이라는 어휘는 다양한 문맥에서 수십 번 등장한다. 행운의 모습, 피규어의 모습, 원형의 모습, 사물의 모습, 관객의 모습, 캐릭터의 모습… 맥락에 따라 “모양”, “형태”, 외형” 등으로 대체할 것을 제안했는데, 훨씬 더 과격한 수정 제안도 흔쾌히 받아들인 그가 어쩐지 여기서만큼은 “모습”이라는 어휘를 쓰고 싶다고 했다. 굳이 따지자면 “shape”, “form”, 또는 “appearance”보다 “look”이나 “outlook”의 뉘앙스를 고수하고자 한 것이다. 하긴, METAL EXP에서도 운의 ‘모습’을 다루고 싶다고 했으니 그가 좋아하는 어휘겠거니 했다. 하지만 수차례 더 원고를 검토하며 알게 된 것은 그의 관심이 경계가 분명한 하나의 조형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그 자리에 있도록 한 집단적 선택과 산업이 일군 풍경에 있다는 점이었다. 그 때문에 특정한 피규어를 조형이나 형태로 호명하는 대신 ‘모습’으로 연거푸 언급하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등장하는 피규어는 결국 그 모습을 만들어낸 한 사회의 단면을 가리킨다. 

더불어 이 어휘는 작가가 이데아와 현상, 원본과 재현 등 미학의 대표적인 쟁점을 보다 구체적인 차원에서 말하기 위한 선택으로도 보인다. 피규어의 생산 과정을 다룰 때 등장하는 시스템과 독자성 사이의 긴장이나 재현의 문제는 미술의 창작 과정에 바로 대입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미술 이론의 언어를 바로 끌어오지 않는 방식의 글쓰기는 오히려 전통적인 이슈를 새로운 맥락에서 직시할 수 있도록 한다. 

“언어” 

작가는 언어와 꽤 복잡한 관계를 이어온 것 같다. METAL EXP에서 보여준 영상 Explain, Bug(38분 16초, 2018)에서 화자는 자신의 마음을 전하려는 편지를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토로하며 시작되고, 이 책 또한 서두에서 언어가 생각을 담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매체지만 동시에 전달하고자 하는 바로 그 생각을 배신하고 만다는 점을 언급한다. 항상 표현의 차선책이면서 유일한 선택지인 언어. 작가는 언어의 작용을 언제나 의심하지만, 결국 그것에 기댈 수밖에 없는 모순을 매번 의식하고 있는지, ‘언어’라는 어휘 또한 자주 사용한다.

이 책에서 ‘언어’는 두 가지 차원에서 피규어를 이해하는 중요한 입구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언어를 지시하는 것(기표)과 지시되는 것(기의), 즉 거칠게 정리해서 형태와 의미의 조합으로 이해하는데, 이런 구조는 피규어에 거의 그대로 적용된다. 어쩌다 우리 눈앞에 놓인 물리적인 사물과 그것이 지시하는 바의 조합이 바로 피규어이며, 이런 점에서 피규어는 그 자체로 언어다. 따라서 피규어는 작가에게 독해, 또는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구조적인 이해는 앞서 언급한 피규어 TEXT에서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어쩌면 피규어-언어에 대한 전제야말로 동일한 제목만큼이나 두 책을 이어주는 공통분모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작가는 집단적 경향이나 공유된 인식을 다룰 때 ‘언어’라는 어휘를 사용한다. 작가는 피규어를 개별적인 조형이나 고립된 취향으로 간주하는 인식에 반해 공동의 욕망과 미래의 풍경이 반영된 ‘모습’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책 전반에 걸쳐 피규어를 제작할 때 투입되는 자원을 거듭 상기시키는 것은 그 사물이 단지 누군가의 내밀한 열망을 구현해낸 것이 아니라 적정 수준의 수요에 의해 탄생한 것, 즉 통용되는 언어라는 점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피규어가 ‘언어’로 이해될 때 비로소 현대사회, 또는 ‘우리’의 부침과 미래에 관해 감히 이야기를 꺼내 볼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아마 개인의 욕망과 산업적 기반이 서로 밀고 당기며 융기한 상태, 곧 ‘언어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 그려보고 싶었을 것이다. 


‘전문 편집자’로 보기 어려운 사람이 어쩌다 작가의 원고를 만나 지난 몇 달 동안 집요하게 참견하게 된 것은 피규어가 그렇듯 책 또한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끌어다가 동결시켜버린 시간은 함께 만들고 읽은 이들 모두의 것이다. 매년 두 차례 돌아오는 원더 페스티벌은 아마 이 책이 나온 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피규어 TEXT: 원더 페스티벌 리포트가 반복되는 축제와 함께 흘러가는 시간을 어떻게 견뎌낼지 함께 확인해보면 좋겠다.

피규어 TEXT : 원더 페스티벌 리포트, 돈선필, 킷타이텐,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