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 Sunpil

피규어 TEXT_000

돈선필
201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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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버그에 의해 세상은 멸망하지 않고, 별일 없이 시작된 21세기. 웹 기반 문화가 막 자라나기 시작한 시기였기에 인쇄물을 통한 정보 공유가 유효한 시간이었다. 10대 시절 즐겨본 게임 잡지를 훑어보면, 지금 웹 커뮤니티의 역할을 달마다 인쇄하는 지면으로 대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세기와 21세기 사이라는 어중간한 시간 속에서 10대를 보내고 있는 학생에게는 월간 게임 잡지의 어수룩한 레이아웃과 흐릿한 스크린샷이 현실보다 생기 넘치는 현장이었다. 특히 그 당시 즐겨본 게임 잡지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피규어’는 작은 충격이었다. 3~4쪽 분량의 특별 기획으로 다뤄진 짧은 기사였지만, 그 내용은 아주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피규어에 관한 간략한 정리와 전직 기타리스트가 운영하는 피규어 숍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완구와는 확연히 다른 피규어의 퀄리티와 디테일, 전문적인 조형 기술의 결과물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소유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었다. 무엇보다 독특한 형태의 물질을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다는 사실에 매료되었던 감각이 선명하다. 불과 15년 전 이야기지만, 그 당시 피규어는 아주 마이너에 마이너한 장르였기에 국내에서 정보를 얻거나 원하는 물품을 손쉽게 구매하기 어려웠다. 국내에 피규어를 다루는 전문 매장도 몇 곳 없던 시절이었다. 서울 시내에 몇 안 되는 오프라인 매장을 찾아다니는 것은 일종의 모험 같았다. 조악하게 제작된 웹사이트에 올라온 사진과 약도를 가정용 잉크젯 프린터로 출력해 실제 거리 풍경과 비교하며 길을 찾는 것은 흡사 롤플레잉 게임의 주인공과 된 듯한 기분이었다. 지도를 보고 미로를 헤매면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피규어 전문 매장이라고 부르기에는 피규어 상자들이 진열된 ‘방’에 가까운 곳이 대부분이었고, 품목도 그리 다양하지 않았다. 그리고 방문하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밀거래 현장 같은 기분도 들곤 했다. 하지만 피규어 숍의 조악한 환경과 피규어 패키지들의 조형적 형태가 대비되는 흥미로운 풍경이 기억 난다. 확실히 시내를 거닐다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

현재 피규어가 사회 안에서 사용되는 방식도 15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매니악한 소수의 사람이 즐기는 조형물이 사회 안에서 보편적인 장르로 자리 잡아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큰 규모의 전문 매장들이 시내의 번화가에 들어서 있고 길거리 가판대나 지하철 상가에서 ‘짝퉁’ 피규어도 판매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일본 망가, 애니메이션 콘텐츠의 국제적 부흥이나 북미의 마블, DC코믹스 영화들의 상업적 성공이 오타쿠, 마니아층에서만 머물던 피규어를 일반 문화 산업의 위치까지 끌어올려 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게다가 근래 국내에서 유행하는 일식 붐에 힘입어 적당한 실내 인테리어에 인기 만화 ‘원피스’ 캐릭터의 피규어를 선반 위에 놓으면 자연스럽게 일식집이 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이처럼 ‘보통 생활’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 ‘피규어’라는 사물이 아주 유연하게 일상 언어가 되어가는 모습은 정말 흥미롭다.

우리는 다양한 사물과 마주하며 살아간다. 집 안을 둘러보자. 자연물보다는 인간이 생산해낸 사물들이 대다수다. 거주 공간에는 생존을 위한 인공의 도구들이 부지기수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생활은 우리의 삶을 둘러싼 사물을 익숙하게 만든다. 그런데 가끔 익숙한 풍경을 조금씩 흔드는 사물이 있다. 그것들은 피규어였다. 대부분의 사물이나 도구들은 각각의 존재 목적이 있다. 그런데 피규어는 ‘거기에 있다’는 이유 외에는 아무런 기능이 없는 무용의 사물이다. 저 쓸모 없는 물건은 왜 존재하는가?

미술관에 가면 다양한 작품이 공간 안에 놓여 있다. 전시장이라는 곳은 독특한 장소다. 현실감이 없는 하얀 벽이나 지나치게 안정적인 공기. 평소 살아가면서 마주치기 불가능한 기묘한 사물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는 곳이 전시 공간이다. 신비하게도 발걸음을 조금만 옮겨서 문밖을 나서면 평범한 현실로 쉽사리 돌아올 수 있다. 전시장의 안과 밖은 다른 시공 같다. 전시장을 즐겨 찾게 되는 것도 평소 생활에서 느끼기 어려운 감각을 손쉽게 얻게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품을 마주하며 감지하게 되는 낯설고 생경한 감각은 언제나 기시감이 든다. 어디선가 느꼈던 이 기분은 무엇인가? 그건 피규어를 마주할 때와 같은 순간이었다.

어떤 대상을 마주할 때 느끼게 되는 생경함은 삶을 재미있게 하는 유일한 힘이다. 미술과 피규어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평이한 시간에 조촐한 자극을 주는 유일무이한 것들이기 때문 아닌가? 미술을 바라보는 눈과 피규어를 바라보는 눈은 어느샌가 같은 선상에 자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