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 Sunpil

피규어 TEXT_001

돈선필
2016-04-03

1.

피규어라는 독특한 사물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캐릭터’를 이해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망가나 애니메이션의 인기 캐릭터가 파생상품의 형태로 제작, 판매되는 것이 피규어다. 캐릭터는 피규어가 존재하기 위한 시발점과 같다. 사람의 육체가 피규어라면 영혼은 캐릭터다. 캐릭터라는 무형의 관념은 피규어라는 플라스틱의 몸에 담겨있다. 언어의 의미와 기표가 조화를 이루어 사용되듯이 캐릭터와 물질이 결합하여 피규어라는 언어를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추상적인 캐릭터는 어떤 과정을 거쳐 구상적인 사물이 될 수 있는가?

20세기 후반부터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 산업으로 자리매김한 망가(マンガ , 漫畵)와 애니메이션은 다양한 매체들로 재생산되면서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지금도 애장판, 양장본으로 인쇄되는 책들과 DVD, 블루레이 패키지로 제작되는 영상물, 캐릭터가 인쇄된 각종 생활용품과 디자인 상품들, 2차원 캐릭터를 훌륭하게 구현한 신상품 피규어들이 매달마다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파생 콘텐츠 중에서 실사화1 영상물은 이목을 끈다. 이것들은 마치 코스프레2쇼를 연상하게 한다. 현실에서 상상하기 힘든 복장과 머리 모양, 눈동자 색깔을 하고 있는 캐릭터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말하고 움직인다. 마치 길거리에 공연하는 가부키 같다.

실사화 작품과 원작 비교 (히라모토 아키라, 2011, 감옥학원(위) 이구치 노보쿠 감독, 2015, 감옥학원-프리즌스쿨(아래) )

일본의 실사화 영상물과 유사하게 90년대 후반부터 할리우드에서는 코믹스3 원작의 영화 제작이 한창이다. 이 과정에서 코믹스의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들은 제법 그럴싸한 설정과 현실감을 위장하는 의복으로 새롭게 디자인된다. 흥행 수익을 보면 최고 매출 영화 10위 안에 코믹스 기반의 영화가 3편이나 있으며 각 영화의 수익이 10억 달러 이상이다. 이처럼 이 사업은 매우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4

All Time Box Office, WORLDWIDE GROSSES

그렇다면 일본에서 실사화 영화를 제작하는 영화사들의 성과도 성공적일까? 물론 성공과 실패를 흥행 수익으로만 결정할 순 없지만, 상영 당시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 성공적이었다고 보기 힘들다.56 매년 다수의 실사화 영화가 새롭게 제작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영화 흥행 순위 100위권 안에 실사화 영화는 단 한 편도 찾을 수 없다.7 대량의 자본을 들여서 코스프레 촌극 같은 영상물을 만들고 계속해서 흥행 참패를 향한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일본 영화산업의 기술적, 문화적 어리숙함에서 오는 것이 절대 아니다. 1950년대부터 21세기가 1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런 흥행 참패의 보증수표 같은 실사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일종의 전통 같다. 그러면 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실패가 예상되는 영상물을 큰 자본과 인력을 투입해 끊임없이 제작하는가? 할리우드의 마블, DC코믹스 원작의 실사화 영화들의 성공적인 선례를 전혀 참고하지 않고 어색한 코스프레 쇼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의 영상물 제작사들은 바보가 아니다. 이같이 극복 못 할 간극을 만드는 것은 ‘캐릭터’라는 관념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1.1

명사 ‘character’의 의미처럼 캐릭터는 일종의 관념에 가까운 성질을 지니고 있다. 성격이나 기질, 특징이나 개성 등 어떤 대상이 갖고 있는 속성의 한 부분이 ‘캐릭터’인 셈이다. 북미 코믹스는 캐릭터의 속성을 여러 작가에 의한 재해석을 기본으로 한다. 원작자는 존재하지만 하나의 캐릭터에 대한 저작권은 출판사나 제작사가 소유하고 그 캐릭터에 대한 작가들의 다양한 해석을 발행하는 모양새다. 캐릭터 하나에도 어떤 작가가 붙느냐에 따라 동일한 캐릭터에서 다양한 갈래의 성향이 나타난다. 이해하기 쉬운 예로 영상물로 제작된 배트맨의 ‘조커’라는 캐릭터를 비교해보자.

영상물에 등장하는 조커(팀버튼,1989, 배트맨(위). 크리스토퍼 놀런, 2008, 다크나이트(아래))

배트맨(1989)과 다크나이트(2008)에 등장하는 조커는 외향적 동일성은 갖고 있으나 인물의 몸짓부터 말투, 성향 등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언뜻 보면 다른 캐릭터로 착각할 수 있다. 이것은 나무나 의자를 예로 들며 ‘이데아(idea)’를 설명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캐릭터를 다루는 추상의 관념이 중심이 되고 외형의 특성은 부분적인 동일성으로만 남게 된다. 이처럼 북미 코믹스의 캐릭터들은 상황에 맞춰 자유롭게 변주가 가능한 유연성을 갖고 있는 개념에 가깝다. 관객은 다양한 캐릭터들의 갈래를 관찰하고 캐릭터에 대한 무한의 가능성을 상상하며 같은 캐릭터가 시대마다 변화하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일본에서는 보통 캐릭터(キャラクター)를 일본식 조어인 ‘캐라(キャラ)’라고 부른다. 캐릭터를 ‘캐라’라는 재플리시(Japlish)8 로 말하는 접근 방식 자체가 일본 캐릭터의 독특한 성질을 설명하고 있는 듯하다. 일본의 ‘캐라’는 한 명의 원작자에게 탄생한 단일한 개념이다. 북미의 출판 시스템과 큰 차이가 있는 일본 캐릭터 사업 구조가 ‘캐라’가 일원론적 성향을 지니게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캐라’의 성격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캐릭터’에 대한 원본, 원작을 더 중요시하는 점에 있다. 만일 누군가 어떤 일본 망가의 등장인물을 원작보다 기술적으로 뛰어나게 묘사하거나 원작자가 설정하지 못한 기발하고 새로운 서사를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잘 만들어진 2차 창작물에 지나지 않게 된다. 북미의 코믹스처럼 여러 갈래와 방향으로 존재하는 캐릭터가 아닌, 유일무이한 캐릭터의 단일성을 추구하는 곳이 일본이다. ‘캐라’의 변주는 원작자에 의해 선택되고 결정되는 작가의 고유한 특권에 가깝다. 마치 장인이 정성스레 빚어낸 도자기처럼 ‘캐라’는 원작자가 세공하고 서명하는 물건에 가깝다. 일본에서 창작자는 신이 되고 등장인물들은 신에 의해 탄생하게 된 피조물이다.

‘캐라’의 특성은 단일성에만 있지 않다. ‘캐라’와 캐릭터는 디자인에도 차이를 보인다. 일본과 북미의 캐릭터 작화의 경향성이나 스타일이 20세기 후반부터 뒤섞이는 양상을 보이지만, 여전히 두 문화권은 근본적으로 메꿀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북미 코믹스의 캐릭터는 현실 인물의 이목구비를 전사해 와서 캐릭터의 모습이 현실에서의 재현임을 유지하는 방식을 주로 취한다. 예를 들어 슈퍼맨의 외형은 분명 어디선가 보았음직한 서구 남성의 인상을 풍긴다. 윤기 나는 흑발과 8등신에 가까운 정비례 몸매와 뚜렷한 이목구비를 지닌다. 슈퍼맨은 내가 아닌 분명히 다른 누군가인 셈이다. 여기서 독자는 등장인물의 삶과 역경을 이야기의 바깥에서 구경하는 관찰자이자 완벽한 타자가 된다. 이에 반해 일본의 ‘캐라’는 이목구비가 최소 단위로 축약되거나 눈 같은 특정 부분은 과장되고 양식화된 이른바 ‘모에(萌え)9캐릭터’라는 독특한 어법을 발전시켜왔다. 흔히 “만화 캐릭터 같다.”라고 하는 말은 현실의 재현보다는 과장, 축약된 아이콘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는 대상을 말한다.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1992)의 주인공인 세일러문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지나치게 기다란 팔과 다리, 땅에 닿을 듯이 늘어진 노란 양 갈래 머리, 얼굴 면적의 30%를 차지하는 눈과 실선에 가까운 코와 입. 현실에서 이런 모습을 닮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형상은 그저 세일러문의 도상일 뿐이다.

캐릭터 비교(타케우치 나오코, 1992,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좌). DC코믹스, 슈퍼맨(우))

일본의 ‘캐라’는 도상에 가깝게 등장인물을 설계하여 캐릭터와 독자와 거리를 좁힌다.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관객의 위치가 상대적으로 캐릭터와 매우 근접해 있다는 얘기다. 북미 코믹스의 독자가 무대 ‘바깥’에 앉아 공연극을 구경하는 관객의 위치에 있다면, 일본 망가와 애니메이션의 독자는 그 작품의 서사 ‘안’쪽에서 등장인물들과 동일한 경험을 하게 된다. 게게게의 키타로(1967)를 보면 유아스러운 캐릭터 디자인과 상반되게 배경의 극사실적 묘사가 대비되면서 기묘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실사에 가까운 나무나 오두막의 표현에 비해 등장인물 묘사에는 눈에 띄게 표현의 밀도가 부족해 보인다. 촘촘하게 짜인 화면에 비해 간결하게 표현되는 ‘캐라’의 모습은 공백이나 구멍같이 보인다.

미즈키 시게루, 1967, 게게게의 키타로

애니메이션 초속 5센티미터(2007)를 보면 현실보다 더 세밀하고 아름다운 배경 작화와 상반되게 엉망으로 디자인된 인물을 보여준다. 도시 생활에서 흔히 마주하게 되는 지하철의 문이나 난로의 연통보다 인물에 쏟은 에너지는 10%도 안 되어 보인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은 그런 캐릭터의 허술한 빈자리에 관객을 채우고 현실 이상의 아름다운 애니메이션 속 공간으로 보는 이를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다.

신카이 마코토, 2007, 초속 5센티미터

1.2.

인간이 자신과 상대방을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은 바로 얼굴이다. 얼굴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거리감을 확인하거나 자신과 닮은 타자의 모습 속에서 감정을 공유할 때도 있다. 얼굴은 다른 대상과 자신의 거리를 재는 도구 같다. 캐릭터가 현실의 어떤 인물의 모습에 가깝게 묘사될수록 진입 장벽은 높아지고 관객은 구경꾼이 된다. 스콧 맥클라우드의 저서 만화의 이해에서 캐릭터의 기호화 과정을 ‘탈바가지 효과’로 설명하고 있다. 캐리커처처럼 사실적 표현은 정확히 한 사람을 지칭하지만, 추상에 가까운 모습으로 묘사될수록 그 얼굴은 ‘누구나’가 될 수 있다. 이모티콘처럼 극적으로 추상화된 웃는 얼굴10은 인류의 평균적인 미소와 같아진다.

“탈바가지 효과"의 설명, (스콧 맥클라우드. 1993. Understanding Comics. 김낙호 역(2008). 만화의 이해. 서울: 비즈앤비즈, 39pp)

일본 ‘캐라’의 얼굴은 독특하다. ‘캐라’의 얼굴은 실제 이목구비가 묘사되어 있을지언정, 텅 비어있다. 망가, 애니메이션 ‘캐라’들의 이목구비는 부유하는 기호들과 같다. 서브컬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일본의 ‘캐라’, 특히 모에적 요소가 강한 캐릭터들의 얼굴을 구분하기 어려운 것도 이 점 때문이다. 반대로 ‘캐라’의 비어있는 얼굴에 익숙하게 되면 관찰자가 보고 싶은 얼굴을 자유롭게 투영할 수 있게 된다. 비어있는 얼굴은 관객을 ‘캐라’의 내부로 유도한다. 낯선 타자가 아니라 자신이 보고 싶은 얼굴을 자유롭게 조형할 수 있다. 자신의 눈을 거친 ‘캐라’를 이해하고, 자신만의 ‘캐라’를 눈앞에 구현한다. 도상 같은 얼굴은 마치 거울처럼 보는 이를 반영하고 투사하고 정의한다.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배경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SHIROBAKO(2014)에서는 극의 주요인물인 애니메이션 동아리 출신인물들은 망가의 모에 요소로 디자인되어있다. 극 중 배경과 주요 스태프 캐릭터들의 사실적인 묘사나 인물 디자인과는 상이한 모습을 보인다.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일상을 지켜본다는 다큐멘터리 같은 관점에서 등장인물들은 완벽한 타자에 가깝지만, 자신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들은 투사를 위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캐릭터 디자인 차이 비교(P.A.WORKS. 2014, SHIROBAKO)

이와 같은 맥락에서 만화 요츠바랑!(2003~)을 살펴보자. 극사실적인 배경 묘사와 일상적이고 소소한 하루를 에피소드로 다루고 있는 것과 대비되게 주인공 ‘요츠바’라는 어린이는 도상에 가깝게 디자인되어있다. 확연히 만화같이 기호화된 표정과 어디를 보는지 모르는 원형의 눈동자. 요츠바의 멍하고 단순화한 얼굴은 독자를 이야기 안으로 끌어와 가상의 어린아이로 탈바꿈하고 채우는 텅 빈 그릇이다.

다른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수많은 정보와 맞닥뜨리는 순간이다. 이목구비의 생김새와 표정을 보면서 타인에 대한 인상이나 감각을 머릿속에 정리하고 데이터화한다. 그것이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이자 일종의 캐릭터화 과정인 셈이다. 관상(觀相)은 단순히 이목구비의 생김새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의 흔적이 드러나는 지표다. 지구의 70억 명의 사람 수 만큼의 70억 개의 얼굴이 존재한다. 그런데 러브라이브(2013)같은 애니메이션은 얼굴에서 캐릭터를 판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캐라’는 얼굴에 아무런 정보가 없다. 모두 비슷한 얼굴과 유사한 표정의 표본 같다. ‘캐라’에게 얼굴은 자신을 구성하는 핵심이 아니다. 얼굴은 관객을 ‘캐라’의 내부로 호명하는 부수적인 장치에 불과하다. 일본의 ‘캐라’는 캐릭터로서 유지해야 할 특질이나 개성, 속성들을 얼굴이 아닌, 신체의 주변부로 확장한다. 그리고 이 확장은 개념적인 차원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이고 시각적으로 ‘사물화’하는 특징이 있다. 특유의 머리 모양, 복장, 액세서리, 색상, 말버릇, 몸짓 등으로 ‘캐라’의 성격을 구현한다. 관객은 ‘캐라’를 구성하는 서사와 관계없이 가시화되고 ‘사물화’한 ‘캐라’의 속성을 먼저 흡수하게 된다. 머리모양과 색깔, 입고 있는 복장으로 ‘캐라’를 구분한다. 어떤 색깔의 어떤 머리모양을 하고 있지가 ‘캐라’를 구별할 때 최우선의 기준이다. 캐릭터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캐라’의 형태를 알게 된다. 우리는 ‘캐라’를 물건처럼 구체적이고 뚜렷한 형태와 색으로 구분하고 받아들인다. 이런 의미에서 러브라이브는 가장 극단적으로 ‘사물화’한 ‘캐라’를 보여주는 사례다. 관람자가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은 동일한 이목구비의 텅 빈 얼굴을 달고 있는 ‘캐라’들이 형형색색의 가발을 쓰고 춤추고 노래하는 기묘한 풍경이다.

1.3.

코스튬 플레이(costume play)의 일본식 약자인 코스프레는 현실의 인물이 영상 매체 속 캐릭터를 연기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다. 코스플레이어는 자신의 얼굴을 비우고 캐릭터라는 옷을 입으며 현실의 무게를 외면하는 가상 상황을 연출한다. 코스프레의 코스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가발이다. 본래 가발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한 변장을 할 때 가장 효과적인 도구다. 머리의 길이, 색깔만 바꿔도 다른 사람이 된 듯한 착각인 든다. ‘캐라’의 머리 모양은 캐릭터 속성의 연장이다. 비현실적인 모양과 색의 가발은 코스플레이어를 ‘캐라’로 변모하게 하는 중요한 변곡점이다. 일종의 위장막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에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불가능하듯, 평면에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코스프레는 언제나 실패하게 된다. 우리는 코스프레를 보며 ‘캐라’와 엇비슷한 어느 인물을 바라본다. 코스프레는 ‘캐라’를 지향하며 불가능을 전제로 하는 연기에 가깝다.

‘캐라’의 머리 모양과 색, 복장은 그 캐릭터의 성질을 견고하게 고정한다. 무형의 관념에 가까워 유연하게 변모 가능한 북미 코믹스의 캐릭터와는 달리 일본의 ‘캐라’는 구체적으로 자신의 속성과 정체성을 ‘사물화’한다. 마치 기계의 부품처럼 ‘캐라’의 성향과 감각을 딱딱하고 견고한 물체처럼 다룬다. 물체처럼 다뤄지는 캐릭터의 고정된 속성은 망가나 애니메이션과 같이 평면과 도상에서 작동하는 게임에는 사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단단하게 자리 잡은 헤어스타일과 의복 디자인은 ‘캐라’의 비어 있는 얼굴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게 만든다. 망가와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아무리 과장된 옷과 머리 모양, 현실감 없는 얼굴을 하고 있어도 종이와 모니터 안에서는 용인하고 넘어가게 된다. 그런데 다른 매체로 ‘캐라’를 전치시키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히 실사화 영화 같은 현실 기반의 매체는 우리가 사는 세계와 대면하는 문제다. 평면이라는 형이상의 공간에서 도상으로 작동하며 단단하게 ‘사물화’되어 있는 ‘캐라’에 현실과 실체의 중력을 더하면서 균열이 발생한다. 일본에서는 이미 ‘캐라’의 존재가 ‘사물화’ 되어있기 때문에 ‘캐라’의 속성을 이어가는 방법도 ‘사물화’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있다. 일본의 실사화 영화에서 배우들이 ‘캐라’의 가발을 쓰고 진지한 연기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가발이라는 구체적인 사물이 그 ‘캐라’임을 증명하는 유일무이한 장치였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캐릭터는 연기가 아니라 외형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배우는 2차원 ‘캐라’와 다르다. ‘캐라’는 얼굴이 비어있지만 배우의 얼굴은 그 사람 자체다. 실사화 영화는 코스프레처럼 불가능과 실패를 전제로 하고 있지 않다. 보는 이는 일본의 실사화 영화에서 ‘캐라’와 배우가 섞이지 못한 채 이상하게 뒤엉켜있는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어색한 조합이 불협화음을 만든다.

인기 있는 콘텐츠가 다양한 매체로 재생산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숙명이라면, 이 흐름에 어색하게 휩쓸리고 있는 것이 일본의 실사화 영상물이다. 실사화 영상은 일본 ‘캐라’의 ‘사물화’의 특성 때문에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처럼 캐릭터나 관념을 물화하여 접근하는 방식은 유연성 부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걸까? 사실 ‘캐라’처럼 일본에서 캐릭터를 인식하는 방식이나 관념과 감각을 ‘사물화’하여 받아들이는 방법론을 훌륭하게 활용하고 있는 다른 분야가 있다.


  1. 실사영화와 ‘실사화’ 영화는 차이가 있다. 원래 영화는 실사 촬영을 기반으로 한다. ‘실사화’ 영화는 실사가 아닌 것, 즉 애니메이션, 망가와 같은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되는 영화를 말한다. 실사화 영화는 언제나 원작에 의존적인 형태로 제작된다. 

  2. 코스프레(コスプレ). 코스튬 플레이(costume play)의 일본식 조어.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의 캐릭터, 혹은 인기 연예인들이 하고 있는 의상을 입고 촬영회나 행사, 기타 장소에서 놀거나 전시하는 행위다.  

  3. 마블(Marvel Comics)과 디씨(DC Comics)로 대표되는 미국 출판 만화를 지칭한다. 마블의 대표적인 작품은 스파이더맨, 엑스맨, 아이언맨, 헐크, 어벤저스 등이 있다. DC는 슈퍼맨, 배트맨, 플래쉬, 그린랜턴 등의 작품을 연재한다. 

  4. 어벤져스(2012), $1,519,557,910.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 $1,401,213,387. 아이언맨 3(2013), $1,215,439,994. List of highest-grossing films. Box Office Mojo  

  5. 「オイ…ガキ共…これは…どういう状況だ?」実写版『進撃の巨人』後篇 “評論家が評論を避ける”事態に(2015. 10. 10) 

  6. 성상민. (2014. 01. 19). 캡틴 하록은 어디를 향해 표류하는가.” 

  7. 日本国内歴代総合興行収入ランキング 1位 - 100位 

  8. Japan + English의 합성어 

  9. 모에(萌え)는 일본어로 “싹트다”라는 뜻이지만 일본의 대중 문화로 인해 만화나 애니메이션, 비디오 게임 등의 캐릭터에 대한 사랑이나 호감을 말하는 일본어 표현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안경소녀 모에 眼鏡っ娘萌え는 안경을 쓴 소녀 캐릭터에 대한 취향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 후로 취미 등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의미로 확장되어, 전동차에 대한 관심을 가리키는 전차모에(鉄道萌え)와 같은 표현도 등장하였고 특정한 상징이나 형태를 지니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다. 

  10. 일반적으로 이모티콘을 이용해 웃음을 나타낼 때 서양권에서는 가로형( :-) )을 동양권에서는 세로형( ^-^ )을 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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