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 Sunpil

피규어 TEXT_005

돈선필
2016-05-01

5.

취미와 미술을 오가면서 피규어를 수집하고 있다. 실제 수집량이 미비하니 ‘관심을 많이 두고 있다’가 더 정확할지 모르겠지만, 피규어를 중심으로 스케일 모형, 건프라, 레진키트, 소프트비닐 모형까지 특수한 형태를 하고 있는 작은 공산품에 관심을 두고 살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처음 피규어란 장르를 접하면서 느꼈던 놀라운 감정이나, 15년이 지난 지금 피규어를 바라볼 때의 ‘낯설음’은 아직까지도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다. 생활을 위해 구비되어 있는 도구들과는 달리 기능이라고는 ‘존재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는 고가의 플라스틱 조형물은 항상 낯설기만 하다.

해가 갈수록 발전하는 조형, 복제, 도색 기술은 피규어를 유용한 물건으로 보이게 한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대량생산을 위해서 제한적인 재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생산 공정은 피규어의 영속성을 희미하게 한다. 플라스틱 합성수지의 연약함은 시간의 무게를 이기기 힘들다. 변색되고, 휘어지고, 처음 포장 상자에서 꺼낼 때 느낄 수 있는 표면의 영롱함은 한순간의 환상 같다. 피규어는 최신 플라스틱 성형술, 고도의 복제 기술을 뽐내는 결정체처럼 감탄을 자아내게 하지만 아무런 용도가 없는 한시적인 흔적에 더 가깝다. 피규어라는 플라스틱 덩어리들은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마련해야 하는 조건들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피규어에 지출할 돈으로 “쌀을 사는 게 현명할”지 모른다.

수년 전부터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집 앞 골목에서 구조한 새끼 고양이가 인연이 되어 지금은 팔자 좋게 집안 구석에서 낮잠을 즐긴다. 동물을 처음 키워보는 입장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효율성이다. 동물은 자신의 삶에 필요 없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다. 매우 적확하고 분명하게 생존을 위한 행동만 한다. 때로는 로봇 청소기처럼 정해진 시간에 움직이는 기계같이 보인다. 만약 시간이 남는다면 에너지 축적을 위해 잠을 잔다. 벽에 걸려있는 뻐꾸기 시계가 작동하는 것처럼 정해진 시간마다 먹고 자고 가벼운 스트레칭을 반복하는 이 생물은 털로 덮여있는 물체 같다. 사람도 큰 카테고리 안에서는 동물이다. 반복되는 생활 환경은 고양이의 하루와 그리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우리는 노동의 고됨을 빗대어 ‘일하는 기계’ 같다는 문장을 사용하곤 한다. 효율적인 생존활동을 위해서 반복을 계속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샌가 기계 같은 하나의 물체가 되어있다.

처음 피규어 대한 글을 작성하기로 한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날마다 빠른 속도로 수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다. 얻는 만큼 기억에서 밀려나며 잊게 되는 것들도 부지기수다. 그래서 피규어라는 한가지 대상을 오랜 시간 동안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피규어는 그 자체가 비효율성의 집합체다. 웬만한 물건들에 비해 과도한 기술과 정성으로 제작되었지만, 도저히 쓸모가 없다. 그렇기에 더욱 매력적이다. 효율적인 삶을 사는 고양이가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행동을 보일때는 이 생물이 보통의 물체들과 전혀 다른 존재임을 환기하게 한다. 쓸모없는, 이 이상한 힘은 그 대상에 몰두할 수 있는 낯선 상태로 만든다.
오늘도 인터넷에서 피규어에 대한 정보를 찾는다. 취미인지 작업재료인지 분간하기 모호한 피규어들이 쌓여만 간다. 무언가를 조금씩 만들어가는 와중에 옆에 있는 동거묘는 기운차게 기지개를 하고 식사 시간을 알리는 신호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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