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 Sunpil

라텍스 주름이 간직해온 꿈

이아름
2022-11-07

이아름

돈선필은 꾸준히 ‘피규어’라는 독특한 사물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담론과 그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탐구해왔다. 이 플라스틱 덩어리는 소비사회에서 대량생산되는 현실의 열화된 복제품이면서도 일종의 성물이나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서 신화화된다. 현실에 없던 것이 현실에 도래할 때, 다시 말해 이차원 평면에 그려진 가상의 캐릭터가 삼차원 공간을 점유하는 입체 사물인 피규어로 구현될 때 그것은 현실의 신체와 조형의 원리보다는 캐릭터라는 기호를 성립시키기 위한 고유의 리얼리티를 반영한다. 《괴·수·인》에서는 사물화의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리얼리티의 변곡점들을 가시화하는 방법론을 유지하되, ‘특촬’이라는 현상을 리얼리티를 구성하는 하나의 태도로 보고 이를 시각 전시의 형식으로 수행한다.

‘특수촬영’이라는 영화 제작 언어에서 비롯된 ’특촬’은 리얼리티를 재현하기 위한 고민에서 발생한 작법이다. 전후 일본 영화의 열악한 제작환경 속에서 대안적인 촬영기법으로서 발생한 특수 분장 슈트와 미니어처는 오늘의 시각으로 보면 빈약한 외관을 띄고 있다. 고무의 질감을 숨기기 어려운 표면에 더하여 인간이 안에 들어가서 연기해야한다는 제약 때문에 슈트의 형태도, 가동성도 인간의 신체에 맞추어야 한다는 한계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촬은 결국 그 당초의 목표였던 엄밀한 재현에는 실패한 기술이라 할 수 있으나, 그 빈곤한 형태가 컬트적 인기를 얻게 되고 하나의 장르가 되어 고유한 작법이 수십 년에 걸쳐 보존되고 발달해왔다. 최신 CG기술이 아날로그에 바탕을 둔 여러 시각효과들을 전지하고 시각문화 현장에 완전한 재현의 신화를 쌓아올릴 때, 특촬은 현실의 무게와 장애를 껴안고 불쑥 튀어나온 곁가지로서 자라왔다. 가공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남아 도무지 ‘진짜’처럼은 보이지 않는 사물인 슈트는 하지만 사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발붙인 세계의 또 다른 현실성들, 무게, 부피, 주름, 요철을 보존하고 내보일 수 있는 것이다. 이로써 돈선필에게 특촬은 “재현을 위해 가공한 사물에 드러나는 한계점을 리얼리티의 기술로 보존하는 행위”로 정의된다.

구체적으로 이 전시는 ‘정동 현상’의 발견자 하카세 박사의 강연 영상과 그 정동 현상의 ‘표본’들로 구성된다. 하카세 박사는 조악한 분장을 하고 원음이 채 제거되지 않은 TV 화면 속에서 ‘정동 현상’이라 불리는 기묘한 사건을 설명한다. 추상적인 것이 구체화 될 때 발생하는 일들은 꾸준히 돈선필의 주제였으나, 여기서 제시되는 것은 ‘정동’, 즉 마음의 상태가 물성을 취할 때 벌어지는 일이다. 허공에서 나타나 일상을 파괴하는 일본 대중문화 속 괴수의 이미지가 재앙을 상징하다는 분석은 새로운 것은 아니나, 재앙이라는 형언할 수 없는 사건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강력한 감정들이 형태를 가지는 것, 나아가 슈트라는 하나의 사물으로 구체화되는 과정은 재현의 과정에 개입하는 또 다른 리얼리티를 드러낸다. 특촬 촬영을 위한 미니어처 세트를 연상시키는 구조물 위에 올라선 조형물들은 갈무리되지 못한 상상 속에서 튀어나온 듯 무언가가 과도하게 덕지덕지 붙어있거나 완전한 형체를 가지지 못해 기괴하게 느껴지는 형상을 취한다. 이것은 한편으로 키워드의 직관적 조합들이나 언어화되기 이전의 구상이 사물성을 띄었을 때의 모호성을 구현하며, 동시에 하나의 재현이 사물이라는 상태로 존재하기 위한 물리적 조건과 제약을 고려할 필요를 제시한다. 《괴·수·인》은 이로써 시각 표현이 진공 상태의 디지털 스크린 속이 아닌 중력과 물리적 공간성의 영향과 다시 조우하고 연동될 가능성을 모색한다.

특촬은 이제 정말로 ‘멸종위기 종’이 되어버렸고, 이에 대한 애수를 포함하여 전시가 조형하는 풍경은 전반적으로 20세기 대중문화에 대한 노스텔지어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 향수는 단순히 “굿 올드 데이즈”에 사랑했던 작품이나 화면을 그리워하는 회귀적 태도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이는 스크린이라는 아공간 속에서 컴퓨터 그래픽의 성형기술로 봉제선 없이 작동하는 현재의 시각문화와 대비되는 것, 실제 세계에서 서로 다른 사물들이 인위적으로 맞물릴 때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유격과 그 유격을 땜질하고 극복하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상상의 태도를 되새기고 이어나가는 수행의 일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