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 Sunpil

소비자, 관객, 독자, 수신자

권순우
2023-08-20

송신된 정보와 수신된 정보가 같다는 보장은 없다. 지금 이 텍스트를 매개로 전달되는 정보도 독자에게 어떻게 수신될지 알 도리가 없다. 정보를 정의할 때, 그것을 사물처럼 대하는 방식과 수신자가 포함된 상황으로 대하는 방식이 있다. 사물화된 정보는 마치 벽돌을 전달하듯이 유실되는 부스러기가 없도록 조심스럽게 전달하여 수신자에게 가능한 동일한 정보를 받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수신자가 포함된 상황으로서의 정보는 이미 건네진 정보의 정확도와 관계없이 수신자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배경 환경과 조건을 포함하여 수신 혹은 변형 가능한 정보가 기능할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 정보의 성격과 특성, 그리고 수신자의 태도에 따라 정보를 접하는 방식은 달라지고, 전자와 후자 사이 스펙트럼 속에서 끊임없이 주저리주저리 정보를 발신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중 미술가가 있다. 정보는 무(無)에서부터 갑자기 창조되지 않기에 그들도 습득한 정보들을 조합하여, 작가를 거쳐 조형 가능한 이야기를 스크린이나 공간에 풀어놓고 밀도를 조절하기 나름이다. (물론 무를 가정하고 그 것에서부터의 창조를 시도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최근에 이르러서는 조합된 정보의 재구성에 집중하는 작가들이 조금 더 많을 것이다.)2023년 8월 적극적으로 정보를 다루는 2가지 양상의 작가들의 전시가 서울에서 열렸다.

돈선필(b.1984)은 일본 서브컬쳐에서부터 시작된 개개의 피규어가 도착한 형식적 조형의 결과물에 의문을 품으며, 그 과정을 추적하고 상상하여 다시금 재배치된 피규어를 특정한 웹 문화 기념비 혹은 기념물을 만들거나 덧붙여 가공된 피규어를 재조형한다. 이는 종종 일반적인 피규어 사이즈를 초과하여 조각처럼 보이는 결과물을 체현하기도 한다. 리서치와 경험, 픽션을 동반한 이야기는 피규어를 둘러싼 안팎의 피규어 소비자들을 거쳐 생산된 조형에 알리바이를 부여한다. 이번 ≪인더스트리얼 미소녀≫에서는 피규어 시장의 커다란 장르를 형성하는 일본의 ‘미소녀’피규어로 도착된 조형 양식의 시간을 비틀어 미(美)형에 의문을 던지며 영상 작업과 조형작업에 걸쳐 보여준다. 미에 대한 감각과 판단, 대량생산에 앞서 생산된 원형과 주형의 컨베이어벨트를 통과한 결과물, 그리고 그 것을 소비하고 다시 웹이미지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커다란 선형의 시장구조는 일반적인 피규어 시장의 그것을 일부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한편, 서브컬쳐를 소비하고 생산하는 데이터베이스풀의 반복적 재조합을 엉성하게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대량 생산의 주형 기술의 한계를 끊임없이 돌파하며 감탄을 자아낼 법한 기술적 성과물이 비정상적으로 큰 눈과 평면의 만화 그림체를 그대로 3차원에 렌더링 해낸 역동성이 성공적으로 적용될 때마다 다소 낭비되고 있는 듯한 신기술과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시장의 열망을 작가는 건조하게 바라본다.

마틴 그로스(Martin Gross, b.1984)는 하이퍼텍스트를 처음으로 주창한 테드 넬슨의 「a File structure for the Complex, The Changing and the Indeterminate」 1에서 가볍게 언급하며 지나간 Dream File을 전시 제목으로 삼아 자신의 작업 구조를 은유한다. 기실 정보의 번역은 대단히 주관적이기에 링크된 하이퍼텍스트들의 총합으로 전시의 구조가 이해되길 원하는 듯하다. 주로 핸드폰과 모니터 스크린에서 취합한 것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문구들은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부유하며 어둡고 천정이 높은 복층의 전시장에 관람객도 함께 부유하도록 한다. 전시장의 입구를 열기 전부터 닫힌 후까지 들려오는 일관되고 큰 사운드의 리듬은 관객의 태도를 선입하고 입장하도록 한다. 그렇게 전시장 전체를 장악하여 끊임없이 움직이는 대형 타이포가 선언하듯 혹은 누수되듯 흐르는 광고와 웹에서 흔히 볼 법한 문구들이 음악에 맞춰 갤러리 전시장의 점멸하는 조도를 조절한다. 과거 월 그래픽으로 일그러지거나 대형화된 텍스트를 오일 스틱 이미지 작업 위에 놓인 듯 두거나 마주 보듯 병치하는 태도의 연장으로서 대형 애니메이션은 전시된 모든 그림을 마주하며 문자를 쏟아낸다. 마틴 그로스에게 취합된 정보는 해상도를 달리하여 또 다른 스크린에 투사되고, 몽타주 되어 이진수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다시 오일 스틱으로 정성스럽고 아날로직한 이미지로 집요하게 재현한다.
마틴 그로스가 취합하여 잘라 붙여넣기(Cut and Paste)하듯 만들어 낸 전시장의 풍경은 다시 정보의 환경 속에서 작가가 만들어낸 작업을 전경삼아 관객으로 하여금 그 속에서 떠돌고 멍하니 지켜보도록, 그리고 마치 BPM과 밀도를 낮춘 음악이 흐르는 클럽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도록 한다. 반면에 돈선필은 피규어, 특히 미소녀 피규어의 형태가 도착하는 과정과 역사를 세심히 리서치 내용을 직접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작가의 전작을 포함하여 업데이트되고 물화된 리캐스팅의 결과물을 모아 올려 둔다. 마치 전시장 바닥에서 칸칸이 그대로 솟아올라 느슨한 인벤토리 창처럼 보이는 좌대와 조형물은 그 사이를 떠돌며 관객이 지켜보아야 하는 새로운 정보로 움튼다. 피규어 시장을 움직이는 소비의 정념을 돈선필이란 작가의 필터를 거쳐 기묘하게 체현된 결과물을 우리는 어떻게 소비할 수 있을까. 돈선필 작가 본인 작업의 뱅크씬2으로 삼은 세이더 시리즈로부터 우리는 가벼운 힌트를 얻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두 명의 예술가는 웹에서 발생하는 노이즈와 정보를 취합해 나름의 기념물을 제작하는 데 있어, 화면으로서의 스크린과 체현으로서의 사물이라는 상이한 결과물을 내놓는다. 마틴 그로스의 스크린은 핸드폰과 모니터 액정을 아웃풋으로 삼는 몽타주의 결과물을 프로젝터로 다시 투사하여 애니메이션, 월 그래픽, 오일 스틱 회화로 덮이는 벽과 종이의 스크린으로 다시 미술 전시장이라는 공간의 사운드에 맞춰 배열한다. 돈선필은 일본 서브컬쳐 미소녀 양식에서 2D로 이루어진 미소녀 애니메이션이 3D의 작은 피규어로 변환되는 과정을 추적하여, 그 결과물을 두고 고민하는 픽션 속 엔지니어 J의 이야기에 따라 작은 미소녀 피규어의 일부로 기능할 기념물들을 전시장에 흩뿌려 둔다.

마틴 그로스가 ≪Dream File≫에 연출해 둔 공감각적 환경에 굳이 사람의 손으로 붙잡아 둔, 디지털을 원본 삼아 물화된 이미지는 또 다른 문구에 제목을 얻어 미술-갤러리에 전시되고, 그것은 다시 관객의 SNS와 웹 환경 이미지로 돌아간다. ‘인풋과 아웃풋’, 돈선필의 ≪인더스트리얼 미소녀≫ 전시장에 짧은 시간 동안 반복되어 울리는 소리. 정보의 인풋과 아웃풋 사이 과정을 추적하며 허물어져 가듯 서 있는 리캐스팅된 조형물과 추리물 속 집착적인 케릭터 방 한켠을 연상시키는 정보의 몽타주 이미지. 그렇게 잡아둔 정보를 조건으로 각각의 갤러리에서 부유하는, 작가들이 발신하는 정보는 전시장을 직접 찾은 관객이든 웹에 올려진 이미지 정보 편린을 접한 사람이든 지금 시점의 미술이 가능한 방식으로 수신되고 있다. 미술가의 갖은 고민을 다한 작업이 또 다른 정보형식으로 수신되고, 그것을 어떻게 소비하고, 재조립하고, 전달하고, 기억할지는 관객에게 달렸다.


아트인컬처 2023년 9월호/포커스-기술과 파토스의 변증/ 권순우(무수정본)


  1. 『ACM 20th National Conference/ 1965』의 Session 4 : Complex Information Processing 

  2.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반복되는 부분을 미리 제작해 두고 사용하는 장면. 뱅크 시스템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