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 Sunpil

실패한 복제, 그리고 표면의 질량에 대하여

유지원
2016-09-01

중고 가구들이 배치된 한옥 곳곳에 피규어를 참조점으로 지닌 조형물들이 놓여 있는 민메이 어택: 리-리-캐스트 Minmay Attack: Re-Re-Cast는 언뜻 보기에 오타쿠적 하위문화로 충전되어 있다. 작정하고 취미활동을 하는 친구의 집처럼 촘촘하게 구성된 전시 공간에서 돈선필은 피규어라는 다소 마이너한 영역에 충실히 천착하면서도 제 옷이 아니라는 듯 새삼 어색해하는 기색을 내비친다. 단색의 피규어-조형물들은 별도의 진열장 대신 테이블이나 스툴 위, 혹은 바닥에 놓여 있다. 덕분에 손에 걸리적거리거나 발에 채이기 딱이다. 무엇보다도, 이 공간에 있는 모든 사물에는 가격표가 붙어있다. 피규어들이 합당한 애정을 받으며 제자리를 차지한 오타쿠의 안식처라기보다 모두 다 처분해버리겠다는 의지의 세일 현장에 더 가깝다. 이처럼 민메이 어택: 리-리-캐스트는 피규어 자체에 몰입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긴장감은 무엇에 기인한 것인가?

작가의 머뭇거림이 가장 두드러지는 전시장 왼편의 작은 방에 줌-인해보자. 그 방에 들어서면 책상-의자-컴퓨터 본체-모니터-스피커 조합의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모니터에는 영상이 재생되고, 왼쪽 스피커 위에는 전체적으로 하늘색으로 도색된 여자 캐릭터의 피규어-조형물이 놓여있다. 영상은 이 오브제의 탄생 경위를 추적하는데, 그 시작점은 얼굴형, 절단면, 눈동자 표현 등이 어설프게 구현된 ‘아야나미 레이’ 피규어를 선물 받고 현(실자각)타(임)를 맞은 시점이다. 여기저기 모자란 구석이 많은 피규어는 새삼 재현이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과 2D에서 3D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버퍼링 혹은 노이즈를 의식하게 만든다.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문자는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에 불과하지만, 유난한 악필을 만나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활자의 물질성을 마주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몰입은 깨지고 애정은 유예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 물음이 말 그대로 존재의 경위를 파악함으로써 해결될 문제였다면, 영상은 제조사 및 원작 만화에 대한 구글링으로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존재물음은 레이 피규어를 캐스팅하여 왼편에 놓인 피규어-조형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으로까지 나아간다. 이를 비추어 볼 때, 이 의문은 피규어가 무-쓸모의 존재라는 것이 이미 전제된 상황에서 어딘가 미심쩍다는 예감 혹은 익숙한 것에 대한 갑작스런 생경함을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피규어는 극도로 추상화된 평면에 속한 캐릭터를 모델링 및 캐스팅, 그리고 도색의 과정을 통해 손에 잡히는 형태로 재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재현은 목적어를 취하며-‘이 캐릭터를 복제한다’ 혹은 ‘이 사물을 재현한다’ 등-원본이 복제물보다 더 ‘리얼’한 것이라는 암묵적 동의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이 전제와 맞물려서 3차원의 감각 세계를 복제하고자 하는 욕망은 재현적 회화의 전통에서부터 3D 프린팅 기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였다. 여기서 피규어가 기존의 관념에 혼란을 주는 지점은 복제물보다 더 리얼해야 하는 원본이 3D가 아니라 2D 세계에 속한다는 점이다. 원본에 해당하는 평면 캐릭터들은 상당한 양의 디테일이 생략된 채 도식적인 요소들-머리모양과 색깔, 옷, 눈매 등-에 의해 구별된다. 피규어는 이러한 평면적 속성들을 스킨 삼아 취함으로써 원본과 외형적 유사성을 유지하되 3차원의 물질성 또한 갖추어야 한다. 이처럼 한 차원이 추가되는 재현 과정을 거친 복제물은 실제 감각 세계에 속한다는 점에서는 원본보다 더 강력하게 리얼한 것이 된다. 다시 말해 피규어란 원본의 표면을 입어야 하지만 동시에 원본보다 더 리얼해야 하는 팽팽한 긴장 가운데 놓인 존재인 것이다.

다시 왼편에 놓인 하늘색 피규어-조형물으로 돌아가 보자. 선물 받은 피규어를 모델 삼아 복제된 이 조형물은 흥미롭게도 캐릭터의 정체성과 연관된 외형적 특징들, 즉 원본의 스킨을 성실하게 입고 있다. 오히려 너무 잘 입은 탓에 레이 피규어를 보완해주기보다는 생경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평면적인 지면에서 운동성을 부여하는 기법을 따라 가방을 든 오른팔이 세 개 추가되었다. 보다 완성도 있는 도색을 꾀하기보다 조형물 전체를 아야나미 레이의 머리색인 하늘색으로 덮었다. 이 조형물은 아야나미 레이 캐릭터를 지시하기보다는 지시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지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레이를 따라 그린 그림보다는 ‘아냐나미 레이’라는 문자에 더 가까운 셈이다. 이처럼 평면의 문법이 3차원 세계에 그대로 전치되면서 외형적 속성 혹은 표면이 지니는 개념적 무게가 의식선상으로 떠오른다. 납작하고 무중력적인 것으로서의 표면이 실은 묵직한 기표 혹은 상징으로 작동하고 있는 모습으로 포착된 것이다. 개별적인 소재를 시작점으로 삼되 보편적인 문제로 트여 나오는 변곡점들이 설정된 이 작은 집에서 흩날리고 있는, 얇게 저며진 이미지들의 질량 같은 것을 상상 속의 저울에 달아본다. 한 회화 작가가 물질의 무게 차 때문에 ‘카드뮴 레드(cadmium red)’와 ‘코발트 블루(cobalt blue)’를 눈감고도 식별해낼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떤 것이 생각난다.


*월간 미술세계 2016년 9월호 vol.382